퐁피두센터 한화 《큐비스트》 전시 동선 따라 읽기: 입구에서 출구까지, 큐비즘 20년 | DAKER 커뮤니티
전시를 보기 전에 동선을 한 번 머릿속으로 걸어 두면, 낯설게 느껴지던 큐비즘이 훨씬 또렷하게 들어옵니다. 특히 퐁피두센터 한화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은 1907년부터 1927년까지 약 20년의 흐름을 여덟 개 섹션으로 나눠 보여 주기 때문에, 방마다 무엇이 달라지는지만 짚어도 관람의 밀도가 달라집니다.
이 글은 공식 국문 리플릿과 공식 홈페이지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리플릿의 전시 동선을 입구부터 출구까지 순서대로 따라가 본 탐방기입니다. 현장 분위기나 관람객 반응은 덜어내고, 각 방에서 무엇을 보면 좋을지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전시를 앞둔 분께는 예습 노트로, 이미 다녀오신 분께는 복습 노트로 읽히면 좋겠습니다.

출발 전에: 큐비즘이 무엇이었나
큐비즘(입체주의)은 20세기 초 파리에서 조르주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가 시작한 미술 운동입니다. 한 자리에서 본 모습을 그대로 옮기던 원근법의 약속에서 벗어나, 대상을 여러 개의 납작한 면으로 쪼개고 다시 짜 맞추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기보다, 알고 생각한 대로 그리기 시작한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큐비즘은 대상을 보는 규칙 자체를 바꾼 실험이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1907년부터 1927년까지, 큐비즘이 태어나 퍼지고 하나의 양식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시간을 따라갑니다. 공식 홈페이지 기준으로 퐁피두센터 소장품으로 꾸린 여덟 개 섹션에 퐁피두 컬렉션 작가 43명이 나오고, 한국의 맥락을 살피는 특별 섹션 ‘KOREA FOCUS’에 11명이 더해집니다. 한화문화재단과 파리 퐁피두센터의 파트너십으로 선보이는 첫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1 전시실: 여섯 개의 방으로 보는 탄생과 확산
리플릿의 동선도를 보면 1 전시실은 입구 쪽 섹션 1에서 시작해 섹션 2, 3, 4로 안쪽을 돌고, 가운데 섹션 5를 지나 출구 쪽 섹션 6으로 빠져나가는 구조입니다. 큐비즘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갈래로 뻗어 나갔는지를 한 번에 훑게 됩니다.
섹션 1 · 새로운 언어의 탄생 (1907–1908)
첫 방은 큐비즘의 출발점을 보여 줍니다. 리플릿은 그 기원을 두 갈래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당시 파리에 들어온 아프리카·오세아니아 미술 수집품이고, 다른 하나는 폴 세잔의 그림입니다. 1907년 피카소는 파리의 민족지학 박물관에서 ‹아비뇽의 처녀들›의 실마리를 얻었고, 같은 시기에 그린 ‹여인의 흉상›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본 브라크는 세잔을 공부한 ‹대형 누드›로 답했습니다. 1908년 비평가 루이 보셀이 브라크의 그림을 두고 모든 것이 ‘큐브’로 줄어들었다고 평한 데서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이 방에서 나옵니다.
이 방에서는 얼굴과 몸이 단단한 덩어리로 단순해지는 순간을 눈여겨보면 좋습니다. 큐비즘 이전과 이후의 경계가 어디에서 생기는지 찾는 재미가 있습니다.
섹션 2 · 형태와 공간의 해체: 분석적 큐비즘 (1909–1911)
두 번째 방은 가장 난해하지만, 동시에 가장 큐비즘다운 시기입니다. 1909년 여름부터 브라크와 피카소는 거의 한 팀처럼 붙어 작업했습니다. 브라크는 두 사람을 ‘밧줄로 묶인 등반가’에 빗댔다고 합니다. 브라크는 주로 정물, 피카소는 주로 인물을 붙들고 갈색·회색 위주의 좁은 색으로 대상을 잘게 쪼갰습니다. 그 결과 사물과 배경의 경계가 거의 사라집니다. 대표 작품으로는 피카소의 ‹기타 연주자›(1910)와 브라크의 ‹원형 협탁›(1911)이 리플릿에 실려 있습니다. 이웃 작업실의 후안 그리스도 1910년 무렵 이 흐름에 합류합니다.
분석적 큐비즘은 대상을 해체해 화면 전체에 다시 흩뿌리는 방식에 가까웠습니다.
이 방에서는 제목을 먼저 읽고, 조각난 면들 사이에서 기타 줄이나 탁자 모서리 같은 단서를 찾아보면 좋습니다. 퍼즐을 푸는 듯한 감각으로 보면 한결 가까워집니다.
섹션 3 · 대중과 마주하다: 살롱 큐비즘 (1910–1913)
세 번째 방에서 큐비즘은 작업실 밖으로 나옵니다. 브라크와 피카소는 파리의 큰 공개 전시인 살롱에 나가지 않았지만, 로베르 들로네, 알베르 글레이즈, 페르낭 레제, 앙리 르 포코니에, 장 메챙제가 1911년 살롱 데 앵데팡당에서 함께 작품을 걸며 큐비즘을 대중 앞에 세웠습니다. 리플릿에 따르면 언론 반응은 대체로 적대적이었습니다. 이들은 큰 화면과 이야기가 있는 주제를 선호했습니다. 대표작으로 실린 들로네의 ‹파리의 도시›는 가로가 4미터를 넘는 대작입니다. 같은 시기 건축과 실내 장식까지 큐비즘으로 풀어낸 ‘큐비스트의 집’ 프로젝트도 함께 언급됩니다.
섹션 2의 작은 실험실 같은 그림과 비교해, 이 방에서는 크기와 주제, 그리고 대중을 향한 태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면 좋습니다.
섹션 4 · 색채, 리듬, 추상: 오르픽 큐비즘 (1912–1914)
네 번째 방에 들어서면 갈색 위주의 화면이 갑자기 밝아집니다. 시인이자 비평가 기욤 아폴리네르는 1912년 말 큐비즘 안의 여러 갈래를 나누면서, 신화 속 음악가 오르페우스의 이름을 딴 ‘오르픽’ 큐비즘에 주목했습니다. 현실을 옮기기보다 화가가 만든 색과 형태로 새로운 화면을 짓는 방향입니다. 로베르 들로네, 프랑시스 피카비아, 페르낭 레제에 더해 소니아 들로네, 프란티셰크 쿠프카 같은 작가가 이 방에 묶입니다. 리플릿에 실린 피카비아의 ‹우드니(미국 소녀; 춤)›는 가로세로 3미터 가까운 크기입니다.
이 방의 핵심은 무엇을 그렸는지보다 색이 어떻게 박자를 만드는지에 있습니다. 리듬, 움직임, 음악, 춤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보면 화면이 다르게 읽힙니다.
섹션 5 · 현실의 재구성: 종합적 큐비즘 (1912–1914)
동선의 한가운데에 있는 다섯 번째 방은 큐비즘의 또 다른 전환을 보여 줍니다. 1912년 봄 피카소는 유포 조각과 밧줄을 실제로 붙인 첫 콜라주를 만들었고, 그해 여름 브라크는 나뭇결무늬 벽지를 오려 붙이는 파피에 콜레를 고안했습니다. 추상 쪽으로 멀리 갔던 그림에 평범한 현실의 조각이 다시 들어온 셈입니다. 이후 브라크, 피카소, 그리스는 이 붙이기의 감각을 그림으로 옮겨 나뭇결이나 대리석 무늬를 흉내 내는 실험을 이어 갑니다. 대표 작품은 피카소의 ‹바이올린›(1914)입니다.
종합적 큐비즘은 현실의 조각을 화면 안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방에서는 진짜 재료인지, 재료를 흉내 낸 그림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장난을 찾아보면 좋습니다. 큐비즘이 단지 해체만이 아니라 재구성이기도 했다는 점이 또렷해집니다.
섹션 6 · 이동과 번역: 국경을 넘은 큐비즘 (1912–1914)
1 전시실의 마지막 방은 큐비즘이 파리를 떠나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파리에 머물던 외국 작가와 수집가, 그리고 유럽·러시아·미국을 도는 순회 전시가 큐비즘을 실어 날랐습니다. 이탈리아의 지노 세베리니와 알베르토 마넬리, 러시아의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미하일 라리오노프 같은 작가들은 속도와 강한 색을 좋아한 미래주의를 큐비즘의 해체·콜라주와 섞어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었습니다. 대표 작품은 곤차로바의 ‹모자를 쓴 여인›(1913)입니다.
같은 문법이 다른 나라에서 어떤 억양으로 바뀌는지 살피는 방이라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하나의 양식이 이동하면서 어떻게 번역되는지가 드러납니다.
2 전시실: 전쟁을 지나 양식이 되기까지
섹션 7 · 흩어진 궤적들: 전쟁기 큐비즘 (1914–1918)
2 전시실로 넘어가기 전에는 미술관 로비의 레몽 뒤샹-비용 청동 조각 ‹대형 말›도 함께 보면 좋습니다. 리플릿은 이 작품을 이 섹션과 연결합니다. 큐비즘과 기계의 감각이 합쳐진 작품으로, 다가오는 전쟁의 징후처럼 읽히기도 한다는 설명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브라크, 레제, 글레이즈, 메챙제 같은 프랑스 작가들은 징집되어 흩어졌고, 살롱도 멈췄습니다. 반면 중립국 스페인 출신인 그리스와 피카소는 작업을 이어 갈 수 있었고, 앙리 로랑스는 1915년 큐비즘 조각을 시작합니다. 레제가 전쟁을 두고 사람을 조각내 사방으로 보낸다며 이 전쟁보다 더 큐비즘적인 것은 없다고 쓴 편지 구절도 리플릿에 실려 있습니다. 대표 작품은 그리스의 ‹아침 식사›(1915)입니다.
이 방에서는 함께 움직이던 운동이 전쟁으로 흩어지면서, 작가마다 방향이 갈라지는 지점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섹션 8 · 실험에서 양식으로: 1920년대의 큐비즘 (1918–1927)
마지막 본 섹션은 큐비즘이 ‘혁명’에서 ‘공통 언어’로 바뀌는 과정을 다룹니다. 전쟁 뒤 유럽에는 질서로 돌아가자는 분위기가 퍼졌고, 큐비즘은 한층 차분하고 장식적인 모습으로 변합니다. 아메데 오장팡과 르 코르뷔지에는 기계에서 영감을 얻은 ‘순수주의’를 내세웠고, 레제도 같은 관심을 나눴습니다. 브라크는 각진 형태 대신 부드럽고 유기적인 구성으로 옮겨 갑니다. 리플릿에는 레제의 ‹예인선의 다리›(1920)와 피카소가 발레 공연을 위해 그린 ‹‘메르퀴르’ 발레 무대 막›(1924)이 실려 있는데, 무대 막은 가로 약 5미터에 이르는 대작입니다.
1920년대의 큐비즘은 더 이상 충격적인 실험만이 아니라, 널리 쓰이는 시각 언어가 되어 갑니다.
섹션 2의 갈색 실험과 이 방의 매끈한 화면을 머릿속에 나란히 놓아 보면, 20년 동안 무엇이 바뀌었는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특별 섹션 KOREA FOCUS: 한국에서 다시 번역된 큐비즘
동선도에 따르면 KOREA FOCUS는 2 전시실 3층 메자닌에 있고, 네 개의 소주제로 나뉩니다. ‘건축무한육면각체 AU MAGASIN DE NOUVEAUTÉ’, ‘근대의 현대: 말말말’, ‘한국의 현대미술과 큐비즘’, ‘하융과 구보’입니다. 같은 층에는 섹션 8의 무대 막과 이어지는 ‘메르퀴르’ 아카이브 영상실도 표시되어 있습니다.
리플릿에 따르면 큐비즘 같은 서구 아방가르드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1930년대입니다. 형태를 과감히 부수는 방식에 거부감도 있었지만, 일본 유학에서 아방가르드를 접한 김환기와 유영국이 큐비즘에서 뻗어 나온 기하학적 추상을 먼저 받아들였습니다. 한국 미술에서 큐비즘의 영향이 가장 컸던 때는 해방과 전쟁을 지난 1950년대로, 변영원, 이수억, 박영선, 하인두, 함대정, 한묵, 박래현 등이 가족, 여성, 소 같은 일상적인 주제에 이 조형 언어를 입혔습니다. 리플릿은 이 짧은 시기가 구상에서 추상으로 건너가는 다리였다고 평가합니다. 대표 작품으로 하인두의 ‹자화상›(1957)과 이수억의 ‹6.25 동란›(1954)이 실려 있습니다.
이 섹션은 그림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리플릿은 파편적인 시 구조 때문에 ‘큐비스트적 시인’으로도 불린 이상과 그 주변 예술가·지식인의 네트워크를 1930년대 경성의 문학, 공연, 도시 문화 속에서 다시 엮었다고 설명합니다. 소주제 제목도 그 연결을 보여 줍니다.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이상의 연작시 제목이고, ‘하융과 구보’는 이상이 ‘하융’이라는 이름으로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년 조선중앙일보 연재) 삽화를 그렸던 인연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곳에서는 파리에서 시작된 보는 방식의 실험이 경성의 시와 소설, 그리고 1950년대 한국 화단의 캔버스에서 어떻게 다시 번역되는지 따라가 보면 좋습니다.
가기 전에 확인할 실용 정보
아래 내용은 퐁피두센터 한화 공식 홈페이지 ‘관람 안내’와 ‘예약·예매’ 페이지 기준입니다(2026년 9월 26일 확인).
- 기간: 2026년 6월 4일 ~ 10월 4일(일). 오늘 기준 D-8입니다.
- 장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63로 50, 63빌딩(미술관 입구는 별관 G층), 1·2 전시실
- 관람시간: 화·목·금·일 10:00–18:00(입장 마감 17:30), 수·토 10:00–21:00(입장 마감 20:30). 매주 월요일 휴관이라 남은 기간 중 9월 28일(월)은 쉽니다.
- 관람료: 성인 28,000원, 청소년·시니어·예술인패스 19,600원, 어린이 16,800원. 48개월 미만, 장애인과 동반 1인 등은 무료이며, 할인·무료는 현장에서 증빙을 확인합니다.
- 예매: 홈페이지에서 시간대별 예매가 가능하고, 현장 구매도 되지만 상황에 따라 대기나 입장 제한이 있을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재입장은 안 됩니다.
- 해설: 무료 강연형 도슨트(14:00, 예약 없이 참여)와 유료 투어형 도슨트(11:30, 16:30, 사전 예약)가 있고, 전시장 QR코드로 오디오 가이드를 쓸 수 있습니다.
- 촬영: 휴대폰으로 플래시 없이만 가능합니다.
관람 안내: https://www.centrepompidou-hanwha.kr/visit/info
예약·예매: https://www.centrepompidou-hanwha.kr/visit/tickets/list
마무리: 왜 지금 이 전시를 읽고 걸어볼 만한가
리플릿을 따라 여덟 개의 방을 걷고 나면, 큐비즘은 결국 보는 방식의 규칙을 바꾼 실험이었다는 점이 남습니다. 수백 년 동안 당연했던 한 점 원근법을 내려놓고, 한 대상을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보고 다시 조립하자고 제안한 움직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전시는 단지 한 미술 사조를 정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의 대상이 어떻게 여러 관점으로 해체되고, 다시 새로운 질서로 묶이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에 가깝습니다. 10월 4일까지 시간이 맞는다면, 동선도 한 장을 들고 이 20년을 직접 걸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참고 자료
- 퐁피두센터 한화,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공식 국문 리플릿(2026, 32쪽, 사용자 공유 파일): https://drive.google.com/file/d/1KEAk5qTw8dUhdWXfRt190lVIqDeZdjb6/view
- 퐁피두센터 한화 공식 홈페이지 관람 안내: https://www.centrepompidou-hanwha.kr/visit/info
- 퐁피두센터 한화 예약·예매: https://www.centrepompidou-hanwha.kr/visit/tickets/list
- ‘하융’ 관련 참고: 중앙일보, 「구보 박태원 탄생 100주년」 https://www.joongang.co.kr/article/3493418
이 전시에서 가장 오래 남았던 섹션이나 작품이 있다면 어떤 이유였는지 궁금합니다.